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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진정한 여행




사진 출처 :

http://etramping.com/el-camino-de-santiago-walking-the-camino-on-25-dollars/



어렸을 적, 나는 여행에도 등급이 있다고 생각했다.
관광버스를 타고 주요 유명 관광지에 내려
잠깐 사진 찍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여행은
등급이 낮은 여행이라 생각했다.

패키지 여행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느라
정작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과 분위기는 느끼지 못하는 여행이라 생각했고
관광버스를 타고 무리 지어 이동하는 사람들은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정작 그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 지역 사람들과는 만나지 못하는 무의미한 여행이라 생각했다.

외국에 나가서 그 지역 음식은 먹지 않고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와 라면, 고추장을 먹는 사람들을 보며 이해하지 못했다.




패키지 여행을 싫어했다.
더 많은 돈과 시간을 쓰더라도 되도록
내 마음 내키는 데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머물고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여행을 선호했다.

외국을 여행할 때에는 그 지역 사람들과 교류해야
그곳을 좀 더 잘 이해하는 거라 생각했다.
택시를 타기보다는 길거리를 뚜벅뚜벅 걷고
때로는 길을 잃어버려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어보는 것이
여행의 진정한 의미이자 그곳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어떠한 여행도 소중하지 않은 여행은 없다는 걸 느꼈다.
관광버스를 타고 잠깐 사진 찍고 그 자리를 떠난 다해도,
우르르 무리 지어 이곳저곳을 옮겨다닌다 해도,
그 지역의 음식 대신 평소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을 먹는다 해도,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고
행복한 경험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듯이,
이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사람은 없듯이,
여행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착한 여행은,
등급 높은 여행은, 멋있는 여행은, 용감한 여행은,
자기만족을 위한 여행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평생을 자식들 뒷바라지하다,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는 법을 잊어버린 우리 부모님들의 여행을
그 누가 시시한 여행이라 말할 수 있을까?
반복되는 야근과 스트레스에 찌든 우리 동료들의
아주 짧은 기간의 사치와 일탈을 감히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아직도 나는 패키지보다는 자유 여행을 좋아한다.
택시를 타기보다는 조금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두 발로 직접 걷는 걸 좋아한다.
적어도 여행을 떠났을 때는
프렌차이즈나 패스트푸드 대신 그 지역 농산물로 만들어진
제철 현지 음식을 먹으려 노력한다.
화려하고 세련된 백화점보다는
조금 불편하고 더러운 시장 구경하는 걸 더 선호한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여행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패키지 여행을 다니며
두 발로 걷기보다는 택시를 타고 여기저기를 이동한다 해도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백화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해도
한국 음식이 그리워 가방에 고이 싸온 김치와 고추장을 꺼낸다 해도

떠났다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멋지고 가치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함께 읽어줬으면 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지역경제 성장, 로컬여행(Local travel)이 있다, 트렌드 인사이트

http://trendinsight.biz/archives/10406


여행의 의미, KimKim

https://brunch.co.kr/@ykimkim/2


관광객의 착각 - 관광지 주민에게 관광객이란, 좀좀이의 여행

http://zomzom.tistory.com/1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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