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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가축 수송선





가축 수송선


출퇴근 시간 지하철 안에서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눈치 싸움이 벌어진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내릴 것 같은 사람을 골라 그 자리 앞에 선다. 때로는 앉아 가기를 포기하고 문 앞에 서서 가거나, 비교적 사람이 적은 노약자석 앞에 서는 사람도 있다.

지하철에서 서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엉덩이 싸움을 한 사람들을 보았다. 찰나의 순간으로 자리에 앉은 사람과 자리에 앉지 못하고 튕겨 나가는 사람이 결정되었다. 자리에 앉은 사람은 안도의 표정을 보였고, 튕겨 나간 사람은 예상치 못한 실패에 창피한 표정을 지었다. 빈자리에 대해 승자와 패자는 결정되었지만, 그 누구도 행복해 보이진 않았다.


이러한 광경은 전혀 유쾌하지 않다. 자리를 차지 못 했을 때는 물론이고, 자리를 차지한다 해도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에 대한 미안함,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자리에 앉아야 하는가 하는 자괴감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매일 전력을 다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서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서서 가는 건 괜찮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 지하철은 더 이상 서서 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지하철은 닭이나 돼지를 가득 싣은 가축 수송차처럼 인간 수송선이 된다.

세태가 각박해져서일까 아니면 경쟁이 더 치열해져서일까, 요즘 지하철에서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배가 나온 임산부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당장 지금 내가 힘드니까. 당장 내가 힘들어 죽을 것 같으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거지고 호의를 베풀기는 어려워진 것 같다.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미국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란 사람은 인간 관계의 거리를 연구했다.


인간 관계의 거리

50cm 미만 : 가족이나 연인처럼 친밀한 유대관계가 전제 되어야 하는 친밀함의 거리
50cm ~ 1.2m : 일상적인 대화가 무난하게 이루어지는 개인적인 거리
2~4m : 별다른 제약 없이 3자가 자유롭게 개입하고 이탈할 수 있는 사회적인 거리
4m 초과 : 연설이나 강의 등 특수한 경우에서 발생하는 공적인 거리.


우리는 매일 아침,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또는 학교에 가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사람 사이의 거리를 애써 무시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친밀함의 거리 50cm 미만의 거리를 넘어 서로 부대끼고 견뎌낸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오늘을 살 수 없으니까, 오늘을 살지 못하면 내일도 살지 못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사람들만 탈 수 있는 가축 수송선에 몸을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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