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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

[제주 올레길 걷기] 1코스 : 가장 올레다운 올레. 오름, 마을, 바다가 있는



1. 제주 올레 1코스 정보


1코스 (15km, 4-5시간)


시흥 초등학교 - 말미오름 - 알오름 - 종달초등학교 - 종달리 옛 소금밭 - 목화휴게소 -

시흥 해녀의 집 - 성산갑문 - 성산항 입구 - 수마포 - 광치기 해변



제주올레에서 가장 먼저 열린 길. 오름과 바다가 이어지는 '오름-바당 올레'다. 아담하고 예쁜 시흥초등학교에서 출발해 사시사철 푸른 들을 지나 말미오름과 알오름에 오르면, 성산 일출봉과 우도, 조각보를 펼쳐놓은 듯한 들판과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검은 돌담을 두른 밭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들의 모습은 색색의 천을 곱게 기워 붙인 한장의 조각보처럼 아름답다. 종달리 소금밭을 거쳐 시흥리 해안도로를 지나면 성산 일출봉이 다시금 눈앞에 펼쳐지는 수마포 해변에 닿는다. 길이 끝나는 광치기 해변의 물빛도 환상적이다.



출처 : http://www.jejuolle.org/?mid=40&act=view&cs_no=1




지도를 클릭하시면 위치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 여행기


숙소에 묵기 전에는 몰랐는데 내가 머무른 게스트하우스는

성산 일출봉에서 걸어서 5-10분 되는 거리에 위치했다.

그래서인지 이른 아침 많은 사람들이 성산 일출봉으로 일출을 보러 갔다.


남들을 따라 나도 일출을 보러 가야하나 고민했다.

비록 내가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남들이 해야하니 나도 해야만 될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건 말건, 계획했건 하지않았건...


이번 여행은 순전히 올레길에만 충실하고 싶었다.

일출을 보고 내려오면 올레길을 걷는데 무리가 갈 것 같았다.

사실 귀찮았다. 이곳까지와서 부지런떨고 싶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되는 간단한 아침을 두 그릇이나 먹고

게스트하우스 차를 타고 올레길 1코스 시작점으로 이동했다.


성산 일출봉 근처 몇몇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무료로

올레길 시작점까지 차로 데려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니

1코스 근처 게스트하우스가 만석이라

숙소를 고민하는 사람이있다면 참고하길 바란다.






드디어 올레길 걷기가 시작되었다.

위의 사진은 올레길 1코스 시작점에 있는 말 모양의 안내 표식이다.


제주 올레길을 안내해주는 안내 표식은 간세와 화살표, 리본 등이 있다.

간세는 사진에 있는 말 모양의 안내 표식으로 제중올레의 상진인 조랑말의 이름이라고 한다.


간세의 머리가 향한 방향이 올레길의 진행방향이다.

올레길을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머리가 진행방향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도 했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께서는 부디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길 바란다.


파란색 화살표는 올레길 진행방향, 빨간색 화살표는 올레길 반대방향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올레길을 걸으며 파란 화살표를 따라 걷는 사람보다

빨간 화살표, 역방향으로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던 것 같다.




서귀포의 시작, 그리고 제주올레의 첫 마을, 시흥리 마을 이야기

지금부터 100여 년 전 제주도는 제주, 정의, 대정 등 3개의 행정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시흥리가 속한 당시 정의군의 '채수강' 군수가 '맨처음 마을'이란 뜻으로 '시흥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제주에 부임한 목사가 맨 처음 제주를 둘러볼 때면 시흥리에서 시작해 종달리에서 순찰을 마쳤다고 한다.



1코스 시작점에는 또다른 안내판이 있었다.

지금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올레길을 걷기 전, 혹은 여행을 하기 전

자신이 가려는 지역에 대해 공부하고 간다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든다.




참 오랫만에 푸른 하늘과 푸른 들판을 보았다.

참 오랫만에 흙길과 산길을 걸었다.

제주의 푸른 하늘과 바다, 맑은 공기는

삭막한 도시에서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나를 위로해주었다.


오랫만에 자연과 함께 하니 참 좋았다.

언젠가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도시를 떠나 자연과 벗 삼아 살 수 있을까?

아니 이상은 현실이 아닌 이상으로 남겨두는게 더 현명한걸지도 모른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고 꿈 꿀 수있도록...



올레길 곳곳에 위의 사진과 같은 디긋자를 겹쳐놓은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입구 폭이 작아 큰(?) 배낭을 맨 나에게는 다소 불편했다.

야생동물을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해 놓은 걸까?

올레길을 걸으며 저 시설물의 정체를 밝혀내려 했으나

결국 올레길이 끝날 때까지 알아내지 못 했다.









저 멀리 성산 일출봉과 바다, 돌담이 보인다.

오름 위에서 보는 성산 일출봉과 바다, 하늘은 굉장히 멋졌다.


하지만 1코스 초반에 있는 말미오름과 알오름은 꽤나 오싹하고 무서웠다.

올레길 옆에 공동묘지가 있었고 울창한 나무 때문에 산 속에는 햇볓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누군가 숲 속에서 뛰쳐나올 것만 같아 무섭고 오싹해서 걸음을 빨리 걸었다.


실제 몇 년 전, 올레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도 말미오름 근처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혼자 올레길을 걷는 여성이라면 1코스 입구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가거나

음침한 구간을 걷게된다면 지인과 통화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다.




올레길 주변에는 수많은 무덤이 있다.

바다가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도

밭 한 가운데에도, 포장된 길 옆에도 무덤이 있다.


올레길을 만들 때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주변 가까이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을것이고 죽음 역시 우리 일생의 한 부분이겠지

올레길 곳곳에 있는 무덤들을 보며 잠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해보았다.


제주에 있는 무덤은 특이하게 그 주변을 돌로 쌓아 놓은 곳이 많다.

누군가는 땅을 파고 무덤을 만들 때, 나온 돌들을 따로 버릴 곳이 없어

무덤 주위에 쌓아 두었다는 이야기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와 동물들이 무덤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담을 쌓았다고 이야기한다.

제주는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잔디와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돌을 쌓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올레길 1코스를 걷다보면 삼다수의 길이 나온다.

길가를 따라 세워놓은 울타리에 삼다수 병 쭈루룩 꽂혀있었다.

처음에는 누가 양심도 없이 이런 곳에 페트병을 버려놓은거야하고 생각했는데

울타리를 따라 저렇게 페트병을 꽂혀 있는걸 알고 웃음이 나왔다.




올레길을 걷다 서로 만나 결혼을 하다니 부러웠다...

들어가서 커피 한 잔을 하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늦게 올레길을 시작했기 때문에 가야할 길이 멀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바쁘다는 핑계로

빨리가야 한다는 핑계로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들이 아쉽게 느껴진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올레길을 걸어도 괜찮았을텐데...








어디선가 강아지가 반갑게 뛰어왔다.

강아지를 쓰담쓰담도 해주고 말도 걸어주며 놀았다.

(강아지가 나와 함께 놀아준 걸지도?)

올레길 주변에는 착하고 귀여운 강아지들이 참 많은 것 같다. 히히히











드디어 바다가 나타났다. 산과 마을을 지나 드디어 바다와 만났다.

해변에서 요염한 자세의 해녀 아주머니 동상도 만나고 내 친구 오징어들도 만났다.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걸을 수 있었다.








위에 있는 나무 막대기 문은 제주 전통 대문 정낭과 정주석이다.

나무막대기 정낭 1개가 걸쳐있으면 집주인이 가까운 곳에 잠깐 나갔다는 뜻이고

2개가 걸쳐져 있으면 조금 더 먼 곳에 갔다는 의미,

3개가 걸쳐있으면 주인이 멀리 나가 집에 없다는 뜻이다.


아무런 공부를 하지 않고 갔기 때문에 올레길을 걸으며 내내 저 문의 의미가 궁금했었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에 제주도 현지인에게 정낭의 의미에 대해 물어볼 수 있었다.

정낭과 정주석의 뜻을 알게된 나는 남들에게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 알려주면

도둑이 들어와 물건을 훔쳐가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옛날 제주에는 도둑이 없어서 괜찮았다고 한다.


제주 곳곳에는 아직도 쉽게 정낭과 정주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정낭의 개수로 이웃들과 소통하는 수단이 아닌

그져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관광자원으로 전락한 듯 싶다.





성산일출봉


높이 180m의 성산일출봉은 약 5천 년 전 얕은 바다에서 일어난 수성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응회구이다. 지하에서 올라온 뜨거운 마그마와 물이 만나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분출된 화산재가 쌓여 일출봉이 형성되었다. 바닷바람과 파도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드러난 지층을 통해 화산폭발 당시 형성된 퇴적구조를 관찰할 수 있다.

성산일출봉 절벽에서는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가파른 경사의 퇴적층들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급한 사면은 흙이나 돌이 아래로 흘러내려 무너져버리는데, 성산일출봉의 경우, 화산폭발 당시 화산재가 물기를 머금은 상태였기 때문에 퇴적층이 흘러내리지 않고 급한 경사를 이루면서 쌓일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성산일출봉은 수성화산 분출 당시 화산체의 모습을 그대로 잘 간직하면서 화산재가 겹겹이 쌓인 퇴적 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형성 초기에 육지와 떨어져 있었던 성산일출봉은 파도에 의해 침식된 퇴적물들이 해안으로 밀려들어와 쌓이면서 육지와 연결되었다. 이러한 지형을 육계사주(陸繫沙洲)라고 한다.
거대한 성의 모습을 닮아 성산(城山)이라 부르던 이곳은 해 뜨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의미가 더해져 지금은 성산일출봉(城山日出峰)이라 부른다. 예로부터 해 뜨는 장면은 영주십경 중 첫 번째로 꼽히며, 12월 31일에 열리는 성산일출제에는 새해의 첫 해돋이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출처 : 세계자연유산 제주

http://jejuwnh.jeju.go.kr/contents/index.php?mid=0202




올레길을 걷다보면 생각보다 밥 먹을 곳이 많지 않다.

마을이 아닌 산이나 바닷가를 걷는 경우도 많고

마을 자체도 작은 곳이 많기 때문에 식당 만나기도 힘들다.

조금만 더 가면 먹을 곳이 있겠지하고

그냥 음식점을 지나치면 끼니를 굶어야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비상식량(?)을 준비해 간단히 점심을 먹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점심 먹을 시간은 한참 지났는데 음식점이라고는

횟집 밖에 나타나지 않아 시무룩해하던 순간

커피 파는 트럭을 발견했다.


배낭을 풀고 의자에 앉아 성산 일출봉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커피와 함께 어제 먹으려고 사놓은 찹쌀 바게트 빵도 먹었다.


자동차가 아닌 두 발로 걷는 여행이기 때문에

함께가 아닌 혼자 걷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내가 있고 싶은 만큼, 내가 보고 싶은 만큼

마음껏 성산 일출봉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스팔트에서 피어난 생명력

자연의 힘은 위대하다.

인간은 자연을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분이다.






1월 말밖에 안되었는데도

제주도에는 유채꽃이 피어있었다.

사실 유채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행히 배추는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다.


처음에는 유채꽃과 무꽃이 같은 꽃인줄 알았다.

근런데 무꽃은 하얀색이고 유채꽃은 노란색이라고 한다.


유채꽃과 비슷한 꽃으로는 배추꽃이 있는데

유채꽃과 배추꽃을 구별하는 방법을 잎을 보면 된다고 한다.

사진에는 잎이 보이지 않아 유채꽃인지 배추꽃인지 잘 모르겠다.




우도로 가기 위해 배를 타는 곳 성산항이다.

최근에는 성산항 안에 내국인 면세점도 생겼다고 들었다.

알록달록한 컨테이너 박스가 귀여웠는데 찍었는데

사진으로는 그 분위기를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다.




저 멀리 섭지코지도 보인다.

섭지란 좁은 땅이라는 의미로, 섭지코지는 곶이라는 뜻의 제주 방언

코지가 합쳐진 좁은곶이라는 뜻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섭지의 뜻이 재사(才士)가 많이 배출되는 지세,

재사가 많이 배출되는 곶이라고 이야기한다.




제주 곳곳은 공사중이었다.

올레길 주변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먼지를 풀풀 날리며 지나가는 트럭과 마주쳤다.

위의 사진은 공사장 펜스에 그려놓은 그림이다.






성산 일출봉은 따로 입장료를 받는다.

올레꾼이라고 무료로 들어갈 수 없다.


지친 몸을 이끌고 성산 일출봉을 올라갈 엄두도 없었고

엄청난 인파 때문에 성산 일출봉은 따로 들어가지 않았다.

성산 일출봉을 방문한 대부분의 관광객은 중국인이었던 것 같다.

성산 일출봉 앞에는 스타벅스와 여러 카페도 있는데 시간이 많지 않아 들리지 못했다.

다음번에 간다면 꼭 카페에서 일출을 보리라.










이곳 성산포 터진목 해안가 모래밭 일대는

1948년 제주 4.3사건 당시 이 지역 무고한 양민들이

군인과 경찰에 끌려와 무참히 학살 된 곳입니다.


어미의 등에 업힌 젖먹이에서부터 80넘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총과 칼과 죽창에 찔려 비명에 가신 곳입니다.

아비가 아들을, 아들이 부모를,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젖먹이가 엄마를 찾던 울부 짖음이 아직도 귓전을 때립니다.


이제 이곳을 지나시는 모든 이들께서는 추모의 뜻으로 바치는 꽃잎을

이 돌에 새겨서 4백여 영령들이 영면하심을 빕니다.


2012년 11월 5일

성산은 4.3사건 희생자 유족회 회원 일동




섬에는 우수가 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마음 갑갑하게 만드는 이유다. 오늘날 제주에는 달콤함과 떫음,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다. 초록과 검정, 섬의 우수, 우리는 동쪽 끝 성산 일출봉 즉 '새벽 바위'라 불리는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 바위는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한 검은 절벽이다. 한국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첫 해돋이의 마술적인 광경의 축제에 참석하러 오는 곳이 바로 여기다.

1948년 9월 25일(음력) 아침에 군인들이 성산포 사람들을 총살하기 위하여 트럭에서 해변으로 내리게 했을 때 그들의 눈앞에 보였던 게 이 바위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에 느꼈을, 새벽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동안에 해안선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의 친숙한 모습으로 향한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 냉전의 가장 삭막한 한 대목이 펼쳐진 곳이 여기 일출봉 앞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 군대와 경찰이 양민학살(인구 10분의 1)을 자행한 지분한 시건으로 시작되었다.


오늘날 이 잔인한 전쟁의 기억은 지어지고 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신들 부모의 피를 마신 모래에서 논다. 매일 아침 휴가를 맞은 여행객들은 가족들과 함께 바위 너머로 솟는 일출을 보러 이 바위를 오른다. 숙청 때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을 잃은 시인 강중훈씨 조차 시간의 흐름에 굴복했다. 그가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았다면 - 그의 시 한편 한편이 그 9월 25일의 끔찍한 흔적을 지니고 있다 - 그걸 뛰어넘을 필요성도 알고 있다.

유럽 잡지 <GEO> 2009년 3월호에 게재된 제주기행문 중에서
J.M.G Le Clezio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주 4.3사건


1948년 4월 3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와 미 군정의 강압이 계기가 되어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항쟁

'4.3특별법'에 의하면 제주 4.3사건이란 1947년 3월1일을 기점을 하여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제주 4.3 사건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2008&cid=830&categoryId=830




엄청난 충격이었다. 올레길에는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환경만 있는 줄 알았다.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가슴 아픈 역사를 만날거라 전혀 생각하지 못 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4.3사건에 대해서 알지도 못 했고

제주도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학살이 있었다는 사실도 나는 알지 못 했다.


흔히 제주 사람들을 배타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마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4.3사건과 같은 역사 때문에

제주 사람들은 더욱더 육지 사람들을 경계하는지도 모른다.


올레길을 걷는 동안 마주친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은

이곳에 서려있는 사람들의 한과 슬픔은 대비되어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올레 1코스의 끝이자 2코스의 시작점인 간세.

누군가 21개의 올레길 코스 중 한 곳만 가야한다면

제주의 오름, 마을, 바다, 역사가 있는 올레길 1코스를 추천해주고 싶다.

올레길을 걸으며 하필 이 곳에서부터 올레길이 시작되는걸까 생각했는데

1코스를 다 걷고 나니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밥을 먹으러 나갔다.

주변에 고기국수 집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게스트하우스 부엌에서 요리를 할 수도 있지만

재료를 사오고 요리를 해 먹을 기운이 없었다.


멀리서 국수집을 발견하고 드디어 제대로 된 밥을 먹는 다는 기쁨에

힘차게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식당에 있어야 할 식탁대신 책상이 놓여있었다.

시골이라 식당과 학원을 같이 하는 줄 알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보니

옆 칸에 있는 국수집을 착각하고 학원으로 들어간 거였다.

피곤한 몸 때문에 정신줄을 놓았는지

한 동안 멍한 상태로 있다 학원을 나와

옆칸에 있는 국수집으로 들어갔다.


그때 놀란 학원 선생님이 계시다면

이 자리를 빌어 실례했다는 말을 전합니다...




어제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는데

오늘 묶는 게스트하우스는 방에 나밖에 없었다.

어제는 혼자만의 시간이 그리도 간절했는데

오늘은 혼자 쓰는 방이 유난히 더 허전하다.


장딴지와 종아리에 알이 베겼다. 발톱도 아프다.

무작정 떠나왔더니 숙소 예약도 그렇고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다.


왜 나는 올레길을 걷고 있는걸까?

왜 난 편한 집을 떠나 사서 고생하고 있는걸까?

몸이 피곤하니 마음도 피곤해지는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내려왔는데

오히려 신경쓰고 생각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졌다.




3. 지출


아침 (게스트하우스 제공)

점심 커피 : 2,000원 (+ 전날 산 빵)

저녁 고기국수 : 6,000원

게스트하우스 1박 (도미토리) : 20,000원

광치기 - 효돈동 버스비 : 3,000원


3일차

총 지출 : 31,000원

누적 지출 : 145,000원